‘중대재해처벌법 1년’ 기업 혼란만 가중… 여야, ‘개정 방향’ 격돌
페이지 정보
관련링크
본문
[특별취재팀=김학형 팀장|윤승준·장혜원·장은영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적용 사업장의 사망사고가 줄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면서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한다. 정부는 기존의 ‘경영자 처벌’ 중심보다 ‘노사 간 자율’ ‘사전 예방’을 강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야가 개정 방향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해 1월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공사 현장이나 공장 등 산업계의 중대산업재해와 지하철·교량·대형식당 등 대중시설에서 생긴 중대시민재해가 모두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고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종업원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간 적용이 유예된다. 내년에는 상시 근로자 50명 미만,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건설업 사업장까지 법 적용 대상이 확대된다. 강력한 처벌을 통한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고 김용균 씨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2020년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도록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의 연장선상에 있는 법이기도 하다.
시행 전보다 사망자 증가… ‘졸속입법’ 논란에 강화규정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어도 산업 현장에서는 사망사고가 전혀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전국의 재해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510명으로,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8명이나 증가했다. 하루 1.9명꼴로 사망자가 나온 셈이다.
실제로 법 시행에도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난해 9월 대전 현대프리미엄 아울렛에서 화재사고로 환경미화·시설관리 직원 등 7명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10월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4명의 사망사고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공공기관 1호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2021년 11월 취임한 나희승 코레일 사장은 법 시행에 맞춰 노후 열차를 교체하고 유지·보수 등을 위해 1조 원가량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1월 충북 영동터널 부근과 11월 영등포역 등에서 탈선 사고가 계속됐고, 3월 대전차량사업소에서 50대 근로자가 열차와 레일에 끼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망사고로 나 사장이 기소됐다.
이 법이 과잉 처벌로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제약·위축시킬 것이라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기업인뿐만 아니라 근로자를 두고 일하는 중앙행정기관장·지방자치단체장·공공기관장·자영업자까지 해당한다. 실제로 법 시행 전인 2021년에 발생한 산재 사망자는 828명으로,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면 수사 대상에 오를 경영책임자는 190명에 달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위험의 외주화’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의수 한국교통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매뉴얼이 업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소비자가 그 책임을 일부 떠안게 된 것”이라며 “위험 작업이 또 다른 영세 업체들에 떠넘겨지는 건 위험의 외주화를 부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관리 체제의 외주화가 생기고 처벌의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이 국내 중소기업 절반은 이 법의 의무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5월 전국 중소 제조업체 504곳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을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곳은 50.6%에 불과했다. 나머지 49.4% 기업은 의무사항을 일부 모르고 있거나 거의 모르고 있는 수준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은 의무사항을 잘 모르는 비중이 더 높았다. 35.1%에 달하는 기업이 법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원인은 안전보건 전문인력이 부족하거나 법 시행에 따른 준비 기간과 예산이 부족한 것 등이 꼽혔다. 80%가 넘는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경영상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다.
앞서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중소기업의 60%가 준수 불가능하다”고 개탄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경영주 의지와 관계없이 감옥에 가야 할 확률이 생긴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에 업주의 의무내용을 명확히 하고, 면책 규정을 마련하거나 처벌 수준을 완화하는 등 보완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한 달 만인 6월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보고에서 정부는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 신속히 해소’를 위해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추진할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하나의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11월 당정협의회를 열고 중대재해법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2026년까지 중대재해 사망사고 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재 사고 사망자 수)을 OECD 평균인 0.29까지 낮추고, 처벌 중심이 아닌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가 책임지는 ‘자기 규율 예방체계’로 노동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했다. 실제 2021년 우리나라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으로, 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렀다. 사고사망 비율이 38개국 중 다섯번째로 높다는 의미다.
여야는 법 개정 방향을 두고 책임자 처벌 완화 vs. 강화로 대립하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 등은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안보다 크게 후퇴한 채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이 3년 유예된 것이 대표적이다.
정재현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은 “현재도 기업들은 산업안전공단 등을 통해 안전보건 관련 인증을 받고 있지만 인증을 받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처럼 인증 여부와 중대재해 감소가 크게 연관이 없는 상황인데도 인증을 받는다는 이유로 처벌 형량을 감면해 주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여당은 처벌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6월 처벌을 감경·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정부가 중대재해 예방에 관한 기준을 고시하고, 기업이 이에 따른 인증을 받은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을 감경하거나 처벌을 아예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대재해 예방 고시의 내용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 13조에 따른 기술 또는 작업환경 표준의 적용에 대한 사항과 중대재해 발생 위험 감지 정보를 송·수신하는 정보통신 시설의 설치 등을 포함하도록 했는데, 골자는 법무부 장관이 인증기관을 지정해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교통수단)이 고시 기준에 적합한지를 인증하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인증여부를 둬서 중대재해 처벌 감경을 한 번 확인할 여지를 주자는 것이다.
박 의원은 “재해가 발생한 경우 법률 적용의 다툼이 있을 수 있고 과도한 처벌로 인한 선량한 자의 억울한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며 “대재해 예방 기준을 인증 받은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게 적용하는 처벌 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해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폭넓게 보호하고자 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위헌 심판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호’로 기소된 두성산업은 지난해 10월 창원지방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두성산업은 경남 창원의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로, 지난해 2월 노동자 10여 명이 유해화학물질에 급성중독돼 대표이사 등이 재판받고 있다.
두성산업을 변호하는 법무법인 화우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헌법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을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면 재판은 헌재의 위헌 판단까지 정지된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 청구인은 헌재법에 따라 기각 결정 30일 안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