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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벌주의 만능 아냐… 위험 최소화 작업환경 마련 선행돼야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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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화두 중 하나는 ‘안전한 일터’이다. 지난해 산업현장에서의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해서다. 지난해 1월 광주 아파트 붕괴 참사, 9월 대전 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사고, 10월 SPL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 등 산업·공사 현장에서의 끊임없는 산업재해 및 희생자들이 이 같은 여론을 계속해 환기시켰다. 지난해 1월 27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경영계의 반발과 처벌의 실효성 논란에 어렵게 시행됐지만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 재해율(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 수의 비율)은 법 시행 이전인 2020년과 같은 0.31%를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선에 대한 본격 검토에 착수했다.

 

◆“‘위험성 평가 의무화’, 모법 취지 반대” vs “선진국 사고 감소 기여”

 

전문가 상당수는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 취지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의수 한국교통대 교수(안전공학)는 “경영진 처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최고안전책임자(CSO)’라는 보직을 따로 만드는 기업들이 있을 정도로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과 재해 발생 시 엄정한 처벌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법이 시행되면 잘 지켜지는지 철저히 감시하고, 위반하면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해야 실효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관련해서는 현장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안전 관리체계가 잘 이행되고 있는지 관할 당국인 고용노동부가 보고 한 번 한 적 없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현장에서 사업자와 노동자의 안전 의식이 개선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은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유족들과 합의하고 끝나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일들이 기업에 무거운 책임이자 부담이 됐다”며 “현장에서 느끼는 무게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올해부터 도입되는 ‘위험성 평가 의무화’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고용노동부는 3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부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작업을 파악한 뒤 안전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의무적으로 구축하도록 했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기업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앞문, 뒷문을 다 열어준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중대재해는 자율 예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정기적 점검과 불시 방문 등 다양한 행정 수단을 동원해 법의 구속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법 취지에 전혀 반대되는 가이드조항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반면 전문가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이나 노동 분야 연구자들은 위험성 평가 제도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해당 제도가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기업 내부 사정을 고려해 어떤 문제가 있었고,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위험성 평가 제도가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제재 확대 방침에 무력화 우려도…“사전 예방 초점 맞춰야”

 

정부는 전문가 TF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대상과 수위 등 제재 방식을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하거나 다수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명확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경제적 제재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방향성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 변호사는 “처벌이 없다면 기업이든 국민이든 법에 대해 긴장을 하지 않게 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들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데 단순 과징금을 물리면 연 매출 수조 원대의 대기업들에 억제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전한 산업현장을 위해 사업주를 압박하는 데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김성룡 전문가TF 위원장은 “벌금이 1억원이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과태료나 과징금은 수십억 원을 매길 수 있다”며 “오히려 행정처분 여부보다 어떤 기준으로 금전 제재를 어느 정도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징역·벌금형의 형사재판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법이 유리하게 적용돼 다툼의 여지가 크지만, 과징금 등 민사 제재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만 집중하기보다 중대재해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둔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 전문가는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시절에도 처벌 수위를 높였지만, 중대재해를 줄이는 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며 “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예방하는 게 핵심인데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어렵고 위험한 업무에는 ‘보상 임금’을 줘서 숙련된 노동자가 담당토록 하는 등 노사가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협력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실무연구회’를 이끄는 송인택 변호사(법무법인 무영)는 “현장 실무자를 중심으로 ‘면책’ 규정을 정해 제대로 일을 했거나 책임이 없다면 면책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면책 중심으로 가야 예방 중심의 법이 된다”고 조언했다.

 

취재에 도움주신 분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 △고윤기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의수 한국교통대 교수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 △문은영 변호사 △송인택 변호사 △이병훈 중앙대 교수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 △장윤미 변호사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한 15명 전문가 중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명단에 게재하지 않았음.


백준무·이정한 기자, 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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